Wednesday, September 8, 2010

굿바이~ 포스

Posted by megaup On August - 25 - 2009 ADD COMMENTS

소위 ‘국민 신발’이라 불리우는 나이키의 에어포스는 저 역시도 단연 가장 좋아하는 신발이기도 합니다. 사실 포스에 대한 저의 감정을 단순히 ‘좋다’라는 동사만으로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은 게, 부모님께서 사주시는 신발을 신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던 10대 시절부터, 신발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신발 한 켤레 사고서 삼순구식을 일삼을 수는 없었던 궁핍했던 대학 학부 시절을 거쳐, 여전히 학생 신분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쥐꼬리만한 대학원생 월급으로 근근히 입에 풀칠하는 데에 급급한 20대 후반 현재에 이르기까지, 운동화치고는 결코 저렴하지만은 않은 10만원을 호가하는 다소 부담스런 포스의 가격이 항상 이 신발 한 켤레를 내 마음속 로망(?)과 비슷한 위치에 자리잡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포스의 가격이 결코 저렴하다거나, 거품이 전혀 없다거나, 그렇다고 소위 명품 스니커즈들처럼 착용하는 순간 주인의 품격(?)을 격상시켜주는 (사실 명품 따위를 착용해 본 경험이 전무하기는 합니다만) 럭셔리한 아이템이라거나 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개인적인 만족도에서 만큼은 지금까지 신어 본 그 어느 신발보다도 뛰어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허리 36인치 짜리 힙합바지를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면서 ‘바지는 크게 입어야 간지지~’ 라고 주장하던 시절에도 힙합바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신발은 단연 포스였고, 이제 나이 좀 들었으니 깔끔한 캐쥬얼 스타일로 남방에 면바지를 시도해보려 하던 시절에도 가장 무난한 신발은 역시 포스였고, 심지어 지난해에 소위 ‘빅뱅’ 스타일이 대세라며, 이제 조카뻘되는 중,고교생들마냥 나잇값 못하고 스키니(-_-)에 흉측한 바디라인을 드러내며 뻔뻔하게 거리를 활보하던 시절에도 포스만한 신발을 찾기가 쉽지 않았었습니다. 더군다나 가죽 재질이라 매쉬나 누벅 재질의 운동화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관리하기도 편하고 내구성도 좋은 편입니다. 더불어 뭐 이건 절대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기는 하지만… 포스는 굽도 높습니다 –0-

항상 신고 있던 포스가 낡아서 더 이상 신기가 어려워질 때 즈음이면 당연하다는 듯이 신상 포스를 찾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들에서 였겠지요.

 

지난해 봄에 구입하여 무려 1년반여의 시간 동안 제 발을 감싸고, 여기 저기 많은 곳을 다니며 많은 사연을 함께했던 07년도판 올백 포스 미드도 어느덧 많이 낡았습니다. 사실 외관이야 구입 초기처럼 일주일에 한번 꼴로 운동화 세척제로 광 내주고, 색이 바랠때 즈음이면 백화제로 덧칠해주고 하는 애정을 앞으로도 꾸준히 지속할 수 있다면, 다시 조금은 나아질 수 있겠으나, 문제는 제 걸음걸이에 이상이 있는 건지, 운동화 뒷 축이 마치 슬리퍼처럼 얇아지려 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 간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제 드디어 이 녀석도 떠나 보내야 할 시점이 왔음을 직감할 수 있는 순간이죠.

 

그렇게 떠나 보낸 포스의 빈자리를 채운 새로운 얼굴은 놀랍게도 포스도 아니고 심지어 나이키도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중간 중간 의상 컨셉 상이나 용도에 따라 곁가지로 구입했던 신발들을 제외하고, 매일 매일 메인으로 신고 다니는 신발로써 포스가 아닌 신발을 구입한 지는 거의 4년만인 것 같네요.

앞서 그리도 장황하게 포스에 대한 예찬론을 펼치고서, 갑작스레 뉴밸런스로 변절한 이유가 뭐냐고요? 뉴밸런스 굽이 포스보다 높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은 절대!!! 아니랍니다.

소년은 비로소 남자로 진화중인가

Posted by megaup On August - 19 - 2009 ADD COMMENTS

이 놈의 뼛속 깊은 공돌이 기질은 떼어내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무엇보다 몸이 먼저 느끼고 반응해야 마땅할 운동에 열중하면서도, 머리는 계속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의 효과가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나 주기를 갈구하곤 한다.

이렇게 거울에 비친 변해가는 모습을 확인하는 것 만으로는 좀 처럼 만족하지 못하는 내 까탈스런 머리를 달래기 위해, 당분간 주기적으로 인바디, 즉 체성분 측정을 받아보기로 했다.

사실 인바디 검사는 이번이 두번째인데, 지금으로부터 무려 7년전…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에 오르게 된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생각조차 못했었고, 월드컵에서의 1승이 국민 중 상당수의 염원이었던 그 당시, 테니스 수업을 들으며 학점을 받기 위한 필수 과정으로 전혀 궁금하지도, 왜 필요한 건지도 모르던 체성분 측정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물론 7년이라는 시간이 적지 않은 시간이니 만큼 당시와 현재의 측정 결과를 직접 비교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수는 있겠으나, 나름 파릇파릇하던 20대 극 초반 당시의 내 몸과,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서른 즈음 20대 후반의 내 몸이 얼마나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책상 서랍 속 어딘가에 쳐박혀 있던 7년전 측정 결과를 찾아서 비교해 보았다.

결과만을 놓고 보면 체중이 5킬로나 늘었음에도 지방은 오히려 소폭이나마 줄었으니, 오히려 20대 초반보다 지금이 더 나은 상황이라는 이야기인데… 이런 걸 보면 ‘솔로 8000일 현수막 사건’으로 대표되는 나의 20대 초반이 내 인생의 암흑기로 기억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일면 납득이 가기도 한다. 뭐 그렇다고 지금이 그 때보다 딱히 나은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소년이여 조금 늦었지만 이제서야 비로소 남자로 진화중인건가

다시 시작합니다

Posted by megaup On September - 20 - 2008 ADD COMMENTS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블로깅이 땡긴다고 해야 하나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곰곰히 되짚어보면 블로깅이라는 용어 자체가 지금처럼 제 귀에 익게 된 것이 불과 4~5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인데, 이렇게 ‘블로깅’ 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행위 자체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는 것을 보면 블로깅이라는 행위가 특별하긴 한가 봅니다. 하긴 비단 저 뿐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많은 부류에게 있어서 그 특별함이 유효했기에 블로그 문화가 이렇게 세계화될 수 있었던 거겠죠.



저에게 있어서 그 특별함의 뿌리를 되짚자면 아마 여전히 제 방 책꽂이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낡은 일기장을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네요. 벌써 12년전의 일이네요. 중학교 2학년 때 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어머니께서 뜬금없이 일기장을 하나 사다 주셨죠. 요즘 초등학생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국민학교를 다니셨던 분들 께서는 대부분 공감하실 법한 당시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바로 일기 쓰기 숙제였을 것입니다. 심지어 저같은 경우는, 중학교 입학 직후 가장 좋았던 기억 중 하나로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꼽았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지긋지긋하던 일기 숙제의 악몽에서 벗어난 지 채 2년도 되지 않아서 또 다시 일기라니 이게 왠 날벼락인가 싶었던 것이 당시의 심정이었죠. 역시나 그다지 내키지도 않았고, 별다른 강제성도 없었던 일기장이었기에, 그 후, 중학교 졸업 때까지 쓴 일기가 불과 7일밖에 되지 않았고, 어머니의 별로 환영받지 못했던 그 선물도 그렇게 의미를 상실한 채 묻혀지나보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질풍 노도의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차고 넘치던 감정들을 담아 한줄 두줄씩 써내려가던 낙서들이 어느덧 빼곡히 쌓여 제 책꽂이 한 구석의 보물 1호로 자리매김했네요.


인류의 역사는 문자의 사용을 기점으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비록 아직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수 배는 더 많을 저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제 삶에 비춰볼 때, 이 기준은 꼭 인류 전체에게 뿐만이 아니라 각각의 개개인에게도 유효해 보입니다. 제 삶에 있어서 적어도 어떠한 형태로든 기록이 남겨져 있는 지난 십여년과 그 이전의 시간들은 분명 그 의미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겠죠.


불행하게도 한동안 그 기록이 끊어진 채로 살아왔었습니다. 어찌보면 생애 가장 행복했을 시간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시간을 마무리해야 했던 시점에서 남겨진 가장 큰 아쉬움은, 그 소중했던 순간들이 언제 사라져 잊혀져버릴지 모르는 제 기억속에만 남았다는 사실이었죠.


이렇게 다시 삶을 기록하기 시작한다는 것, 이미 늦은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나버린 시간들이 행복으로 기억되기에 그에 대한 아쉬움이 이토록 큰 것 처럼, 앞으로의 기록들이 그 행복을 되찾기 위한 과정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따분하고 무미 건조하기만 한 제 일상에 대한 흔적 남기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어떠한 이야기가 남겨지게 될지는 아직 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직업이 직업이고,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제가 공부하고 있는 내용들에 대한 정리도 유익할 것 같고, 다른 분들 블로그를 보니 프로그래밍 관련 내용들도 많이 남기시는 것 같더라고요. 요즘 들어 간만에 다시 귀에 꽂고 다니는 이어폰 속 음악들에 대한 얘기도 재미 있을 것 같고, 가끔씩 부쩍 우울한 날이면 궁상맞게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연애담을 풀어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아, 참. 어느덧 삶의 유일한 낙이 되어버린 축구 이야기도 빠질 수 없겠죠.


어떠한 이야기가 되든 그 때 그 때의 제 감정이 충실히 담겨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가 그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조금이나마 공감과 더불어 도움을 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를 잘 아시는 분, 저를 전혀 모르시는 분, 그리고 제가 기다리는 한 사람… 누구라도 좋습니다. 이렇게 남기는 흔적들이 제 책꽂이 속 일기장 만큼이나 값져질 수 있는 것은 이 흔적들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겠죠.

연구라는 것

Posted by megaup On February - 24 - 2008 1 COMMENT

중학교 때 였던가
수업시간 중에 한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지



학위 논문이라는게 별 게 아니야.
관련 분야의 책 50권 읽고 자기 생각 정리하면 그게 석사 논문이고,
관련 분야의 책 100권 읽고 자기 생각 정리하면 그게 박사 논문이지.


그 때야 과장 조금 보태자면 정말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선생님 말씀이라면 의심보다는 일단 믿음이 앞서던 시절이었고, 하물며 석사가 뭐고 박사가 뭔지, 그리고 논문이 뭔지에 대한 개념조차 안잡혀 있던 상황이었으니, 아마 저 이후로 꽤나 오랜 기간동안 내 머릿속의 학위 논문 이라는 개념은 그 때 그 선생님의 말씀으로 정의되어 왔던 것 같아. 그 당시 생각으로는 책 50권, 100권 읽고 그저 독후감 한 편 쓰면 되나보다 쉽게 생각했었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학위, 논문 등등의 개념들이 당장 내 앞의 문제가 되어야만 하는 대학원 생의 입장이 되고나서, 그 때 그 선생님의 말씀이 틀렸음을 직감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물론 다른 분야와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해야할 연구, 내가 써야할 논문은 무작정 책만 읽고 내 감상만 풀어 놓기보다는, 번뜩이는 직관에 의한 아이디어가 훨씬 더 중요하게 와 닿았거든. 그 때는 내 직관이 부족한 것이 그저 아직 시작하는 단계이니까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겠거니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면 절로 해결되리라 믿었지.


하지만 그렇게 2년하고도 반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처음 그 시작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지금에 와서야 그 때 그 선생님의 말씀의 본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 같아. 그 직관이라는 것, 그리고 그 직관을 기르기 위해 필요한 경험이라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이 어떠한 문제로 고민을 했으며,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시도들을 해 왔는지에 대해 알아나가는 과정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research 라는 것.
그것은 결국 끊임없는 search 의 반복이 그 전부일지도 몰라.

사회화의 씨앗

Posted by megaup On February - 6 - 2008 2 COMMENTS

인간은 누구나 자기 중심적 사고에 익숙하다. 설령 완벽히 이타적인 성인 군자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타적 행위들의 결과로 얻는 보람이라던가 성취도라던가 하는 가치들을 보면 결국 그 역시도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데에 익숙한 수많은 사람들이 섞여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원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각자 나름대로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기술이 바로 어린 시절 의미도 모른채 무작정 외워 답안지에 적곤 하던 ‘사회화’ 였음을, 나는 그 뒤로 십수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자기 중심적 사고를 하는 A와 B라는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할 때, 이 두 사람에게 주어진 문제에 대한 결과는 셋 중 하나일 것이다. 
a) 애초에 A와 B 두 사람 모두 동일한, 혹은 큰 이견을 보이지 않는 유사한 사고를 하고 있는 경우. 이 경우는 당연히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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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A와 B 두 사람 간에 분명 이견이 존재하지만, A가 B에 대해, 혹은 B가 A에 대해, 또는 쌍방이 서로간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이해할 수 있는 범위내에 위치하는 경우. 이 경우 A와 B 사이의 문제는 해결 가능(solvable) 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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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A와 B 두 사람 간의 사고의 차이가 지나치게 크기에, 서로 간의 이해 가능 범위 바깥에 위치하는 경우. 이 상황에서의 문제가 결국 사람 간에 발생하는 대다수의 곤란한 상황들을 야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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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가 원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되도록 세번째 경우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항상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골라가며 만날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에, 개개인의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넓히기 위한 노력이 요구되며, 이 과정을 사회화 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다고 본다. 주어진 수용 가능 범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안을 고려할 수 있는데, 그 첫번째는 사고 자체의 폭을 넓히는 것이고, 두번째는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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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경험으로 10대, 그리고 20대 초반의 사회가 나에게 요구했던 것이 전자라면, 그 이후의 사회가 나에게 요구해왔던 것, 그리고 앞으로 시간이 지날 수록 그 비중이 좀 더 커질 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 것이 후자의 경우가 된다. 이는 가치관의 형성 시기 전후의 차이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 당장의 편의에 익숙해진 나머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고 판단되는 후자의 경우에 좀 더 의지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 방법간의 차이, 옳고 그름, 혹은 호불호의 여부를 불문하고, 두 개의 선택지에서 공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이 바로 경험의 가치이다. 결국 좀 더 폭넓은 사고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다양한 경험이고, 나와 다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결국 경험이 되는 것이다.


경험은 굳이 좋은 경험만이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오히려 안좋은 경험, 기억하기 조차도 싫은 경험들이 행복하기만 한 경험들 보다 훨씬 많은 것을 남기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내가 처한 이 상황이 비록 순탄치만은 않지만, 이 역시 나 자신의 사회화를 위한 씨앗이 되어줄 것이라 믿어도 되는 거겠지.

안경이 부러졌는데

Posted by megaup On January - 27 - 2008 ADD COMMENTS


무심코 옷으로 안경을 닦다가 안경이 두동강 나버렸어
안경을 벗고 보니 모니터 앞의 글씨조차 제대로 보이지가 않네
원래 내 눈이 이렇게 나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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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免疫)

Posted by megaup On January - 23 - 2008 ADD COMMENTS


면역(免疫)
[명사]
1. 반복되는 자극 따위에 반응하지 않고 무감각해지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의학> 몸속에 들어온 병원(病原) 미생물에 대항하는 항체를 생산하여 독소를 중화하거나 병원 미생물을 죽여서 다음에는 그 병에 걸리지 않도록 된 상태. 또는 그런 작용.


그 대상이 반복되는 자극이건 병원 미생물이건 대체로 그 무엇엔가 면역이 되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유익한 경우가 많지. 유익하다라는 긍정적이기만 한 용어가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적절한 수준에서의 면역 혹은 무뎌짐은 가뜩이나 감당하기 버거운 자극들이 넘쳐나는 이 세상을 편히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임은 부정하기 힘들거야.


그런데 말야… 세상이 변하고 다른 이들이 모두 변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 역시 함께 변해오고 있다는 사실은 쉽사리 인지하지 못하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면역이란 어쩌면 자기 자신 역시 변했음을, 또한 변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가장 적나라한 지표 중 하나가 되어 주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인지 가끔 유난히도 예전의 나 자신이 그리워지는 날에 그 그리움의 발단을 되짚어보다 보면 그 끝에는 어김없이 그 무엇엔가 면역된 나 자신에 대한 인지가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지.


연애의 설레임에도, 상사의 핀잔에도, 그 모든 것이 신선하기만 했던 예전의 내가 유난히도 그리운 오늘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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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서있는 이 곳

Posted by megaup On January - 5 - 2008 2 COMMENTS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볼 때
애들이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을 꼽으라면
아마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다음으로 ‘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될래?’ 가 꼽히지 않을까


이유가 뭔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 나는 그 질문에 항상 한결같이 ‘과학자’라고 대답했었던 것 같아
우연인지 아니면 진정 필연이었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린 시절 장래 희망과 유사한 길을 걷게된 지금에 와서 그 때를 돌이켜보면
치과 의사나 변리사 등등과 같은 좀 더 실용적인(…?) 현실적인(…??) 세속적인(?!)
장래 희망을 갖지 못한 어린 시절 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뒤따르곤 하지


그 때 그 장래 희망 때문이었을까…
내심 의대 진학을 통해 집안을 조금이나마 일으켜주기를 바라셨던 부모님의 바람을 뒤로하고
내 의지대로 공대를 선택하고 이 곳에 자리잡은지도 벌써 7년이 지났어
어쩌면 내 인생을 바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었던
학부 졸업 후 진로 결정 시점도 이미 2년 반이나 지난 기억이고


철저히 내 의지에 의해 선택된 이 길.
그렇기에 그 선택에 대해 짊어져야 할 책임도 날로 무게를 더 해가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곳이…난 왜 이리도 불안한지 모르겠어
자칫 잘못하면 무너져내려 어디론가 빠져버릴 것만 같거든


어차피 이 길을 벗어날 수 없다면…설령 벗어난다 하더라도 이보다 나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면…
엄밀히 말하자면 벗어날 수 있고 더 나은 보장이 있다 하더라도 벗어날 용기가 없는 나 이기에…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곳에서만이라도 벗어났으면 좋겠어
한 걸음만 내딛으면 될 것 같은데…


딱 한 걸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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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juice + fuji superia 200 + fdi scan

Posted by megaup On January - 3 - 2008 ADD COMMENTS

내가 술이라는 것을 처음 입에 대 본 건
10살 남짓 했던 무렵 아주 무더웠던 것으로 기억되는 어느날
냉장고 속 이름 모를 술을 보리차인 줄 알고 들이켰던 때였을 거야.
그 때는 그렇게 쓰고 맛 없는 것을 아저씨들은 뭐가 좋다고 그렇게 마셔댈까 라는 의문을 가졌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그 당시 이해할 수 없었던 대상인 아저씨의 범주에 속하는 나이가 되고 나서야
그 때 그 분들이 마셨던 술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 쓴 맛에는 변함 없는데 말이지.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7년전 겨울.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청춘 시트콤에나 나올법한 낭만적인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에 가득차 있었던 나에게
대학 생활의 첫걸음인 신입생 OT 가 남긴 것은 술…그리고 무엇보다 괴로웠던 뒷끝에 대한 기억들 뿐. 그 때는 그렇게 고통을 남기는 술이 대학 생활…더 나아가 사회 생활에 있어서 꼭 필요하다며
술잔을 건네던 선배의 그 말을 무작정 부정했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편협한 인간 관계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남는 내 학부 시절을 돌이켜 볼 때마다
그 때 그 선배가 건네던 술잔을 그렇게 피했어야만 했나 라는 생각이 들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술이 약한 나에게 술은 어김없이 고통을 동반하는데 말이지.


술은 하면 할수록 는다 라고들 하지.
한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술자리가 흔치 않은 나 이지만
가끔 오늘처럼 유쾌한 술자리를 마친 뒤에는
어쩌면 그 말이 주량에만 관련된 말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해.
비록 내 주량은 감당하기 힘든 뒷끝에 괴로워 하던 학부 신입생 시절이나,
심지어 실수로 술을 들이켰었던 어린 시절에 비해서도
크게 차이가 없다 느껴질 정도로 거의 늘지 못했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에 대한 즐거움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만 가거든.
그 쓴 맛이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뒷 끝은 여전하지만 말이야.

그저 여느 월요일

Posted by megaup On December - 31 - 2007 ADD COMMENTS

작년 이맘때가 그다지 멀지 않은 기억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한데
작년 이맘때의 내 심경도 오늘 같았는지는 잘 모르겠어


언제나 그렇듯 애초의 계획따위는 싸그리 무시한 방탕한 주말을 보내고
새로운 각오와 함께 맞는 그저 여느 월요일과 다를바 없는 아침이었는데
무심코 펼친 다이어리의 인덱스가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한장만을 가리키고 있더라고


내가 나이를 먹고 있어서 인지, 아니면 대학원생 신분으로써 어쩔 수 없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날이 갈수록 나 자신이 여러모로 무뎌지고 있다는 게 확실하게 느껴져
그 중 가장 분명한 것 중 하나가 아마 날짜에 대한 느낌일거야
적어도 내 기억에 나라는 놈은 심할 때는 집착이 아닐까라고 느껴질 만큼
날짜 확인하고 기억하고 챙기기 좋아하는 놈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요즘은 연말 연시건 명절이건 기념일이건 심지어 내 생일까지도 별 감흥을 못 느끼겠어
그만큼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인가…


그런데 말이지…글 쓰다보니 생각난 건데…
다행히도(?) 나에게 날짜에 대한 감흥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닌것 같기도 하네
가끔 달력에 적힌 숫자에 마음이 동할 때가 있기는 있거든
예를 들어, 논문 제출 마감 혹은 과제 마감…그럴때 말이지…


어쨌든 2007년의 마지막 날이라니 나에게 있어서의 2007년도 멋진 말로 정리해보고 싶은데
별다르게 떠오르는 말은 없고 아까 친구 녀석이 툭 던졌던 공감가는 한마디만 계속 귓가에 맴도네



2007년은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가버리네…

2009 K리그 최종 라운드 간단 리뷰

긴장이 풀렸기 때문 일까요?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도 어김없이 최종 라운드에 대한 정리를 시작하기 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

2009 K리그 29R 간단 리뷰

2007 시즌을 앞두고 6강 플레이오프 제도 시행이 발표된 이후, 당시 이 생소한 제도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여론이 지배적이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

2009 K리그 28R 간단 리뷰

숨가쁘게 달려온 2009 K리그도 어느덧 그 마지막 순위 테이블의 실루엣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종료될 때 [...]

2009 K리그 24R (순연) 및 27R 간단 리뷰

어느덧 경기장에는 제법 두툼한 외투를 챙겨 입은 관중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경기장에 부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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