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하나은행 FA 컵 8강전 <포항:성남>
2008년 11월 5일 19:30, 포항 스틸야드
0. 입장
지난 9월말 K리그 20라운드 경기를 관전하고, 포항과 성남의 맞대결에 K리그의 클래식 매치 라는 표현과 함께 찬사를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포스팅의 마지막에 포항과 성남간의 이번 시즌 잔여 경기 일정을 소개드렸었는데, 공교롭게도 포항은 3경기 중 앞서 치룬 리그컵 6강 플레이오프와 2군리그 4강전의 2 경기 모두에서 성남에 승리하며, 대 성남전 연속 무패 기록을 8경기로 늘리는 데에 성공합니다. 성남의 입장에서는 2006년 9월 23일 경기부터 2년이 넘는 기간동안 포항에게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으며, 그 8경기 중에도 단 한번의 무승부 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패하였으니, 자타공인 리그 최강 성남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구겨질만한 사실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렇게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는 가운데, 올 시즌들어 유난히 중요한 길목에서의 잦은 맞대결을 벌여야 했던 두 팀이 이번에는 FA 컵 준결승 진출을 놓고 스틸야드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최근 부진한 경기력으로 리그 선두 자리와 2위 자리를 각각 수원과 서울에게 내주며 리그 마지막 라운드 한 경기를 남겨둔 현재 선두권과 승점 3점차로 3위로 내려앉는 위기에 빠진 성남은 이번 경기 승리를 통해 침체된 분위기의 반전과 포항 징크스의 타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노리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짓고 지난 리그 25라운드 제주와의 경기에서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하는 여유를 보이고도 연승 행진을 이어간 포항은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좀 더 여유를 갖고 경기에 임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1. 선발 라인업
지난 리그 25라운드 경기에서 휴식을 취했던 박원재, 최효진, 조성환, 스테보의 주축 멤버들을 이번 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시킨 포항은,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된 현 상황에서, 주말의 리그 마지막 라운드 경기보다 FA 컵 준결승 진출에 좀 더 무게를 두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김지혁 골키퍼가 골문을 지키고, 수비 라인에 장현규, 조성환 선수와 함께 지난 시즌 우승 주역인 김광석 선수가 오랜만에 선발 라인업에 포함이 되었습니다. 미들 라인에서는 지난 라운드 리그 경기에 출전했던 김기동, 황지수 선수 대신에, 신형민 선수와 함께 1군 경기에 오랜만에 선발 출장한 김윤식 선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좌우의 박원재 최효진 라인이 건재한 가운데, 김재성 선수가 공격을 조율하고, 스테보-황진성 조합의 투톱이 가동되었습니다.
성남은 정성룡 골키퍼가 골문을 지키고, 김영철, 박우현 센터백 라인에, 좌측에 장학영 선수가, 그리고 우측에는 부상인 박진섭 선수 대신 전광진 선수가 선발 출장하였습니다. 미들 라인에는 손대호, 김철호 선수가 김정우 선수의 뒤를 받치고, 전방에는 성남이 자랑하는 모따와 두두, 그리고 아르체까지 이어지는 외국인 공격수 3각 편대가 출격하였습니다. 모따와 두두 선수가 투톱 처럼 위치하고, 아르체 선수는 주로 좌측 측면에 위치하는 형태였습니다.
2. 전반 – 포항의 분위기, 그리고 변칙 전술
경기 초반 포항은 서서히 볼 점유율을 높여가며 경기 분위기를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이 와중에 파리아스 감독은 제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상당히 생소한 변칙 전술을 꺼내드는데요. 우측 윙백 최효진 선수를 스테보 선수와 함께 최전방에 위치시키고, 최전방에 위치하고 있던 황진성 선수를 본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에, 그리고 공격형 미드필더에 위치하고 있던 김재성 선수를 우측 윙백에 위치시키는 포지션 스위칭을 단행합니다. 사실 황진성 선수의 경우는 본래 포지션이 최전방이 아닌 공격형 미드필더이고, 최효진 선수의 최전방 기용 역시 간간히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장면이기에 그리 놀라울 것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만, 항상 허리에 위치하며 경기를 조율하던 김재성 선수의 우측 윙백 기용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기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죠.
성남이 유독 포항에게 맥을 못 추는 결정적인 요인이라면 성남의 좌우 풀백 라인이 포항의 박원재-최효진 좌우 윙백 라인을 막는 데에 번번히 실패해왔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꼭 성남 뿐만이 아니라 포항을 상대해야 하는 리그의 모든 팀들이라면 공히, 포항을 상대로 좋은 경기 결과를 얻기 위해 선결해야 할 제 1 과제가 포항의 측면 라인 봉쇄라는 점에 동의할 것 입니다. 그렇기에 잦은 맞대결로 포항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김학범 감독 역시 포항의 우측면 최효진 봉쇄를 위한 준비가 되어있었을 상황에서, 파리아스가 꺼내든 이 예상치 못한 변칙 전술은 언뜻 꽤나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주로 저돌적인 돌파와 2:1 연계 플레이로 우측면을 지배하는 최효진 선수 대신 압도적인 활동량과 넓은 시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김재성 선수를 같은 자리에 위치시키며 상대의 허를 찌르게 된 상황이 되었죠. 이 변칙 전술은 최전방에서도 예의 그 날카로운 공격 능력을 잃지 않는 최효진 선수와, 본인의 제자리를 찾아 날개를 단 황진성 선수의 활약에 힘입어 전반 초반 경기의 분위기를 완벽히 포항으로 가져오는 데에 일조하며 성공을 거두는 듯 하였습니다. 하지만 역시 익숙치 않은 포지션을 소화해야 했던 김재성 선수는 성남의 역습 상황에서 위치 선정 미스로 성남의 두두에게 지나치게 넓은 뒷공간으로 내주게 되고, 좌측면에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한 두두는 중앙의 모따에게 절묘한 패스를 연결하며 선제골 득점에 일조하게 됩니다.
한 경기 결과로 준결승 진출이 결정되는 경기의 중요도 탓 인지, 선제골 실점 이후, 파리아스 감독은 이른 시간에 교체 카드를 꺼내듭니다. 전반 내내 그다지 좋지 못한 경기 감각을 보이던 김윤식 선수 대신 최근 포항 상승세의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특급 조커 노병준 선수를 투입합니다. 이로써, 노병준 선수가 스테보 선수와 짝을 이루고, 최효진 선수가 본래 자리인 우측 측면으로, 김재성 선수가 김윤식 선수의 빈자리로 이동하며, 포항의 포메이션은 비로소 정상화되게 됩니다. 파리아스 감독의 야심찬(?) 변칙 전술은 선제골 실점이라는 좋지 않은 결과만을 남긴 채 전반전과 함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3. 하프타임 – 지나치게 다채로웠던 하프타임 이벤트
전반 내내 경기를 지배했지만 단 한번의 역습에 선제골을 허용했기에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기분으로 하프타임 이벤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홈 관중들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펼쳐진 아주머니들의 댄스 이벤트가 끝나고, 의자 밑에 숨겨둔 깜짝 보물 찾기를 통해 진행된 경품 추첨 행사가 시작되면서 관중석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와중에 원정팀인 성남의 서포터가 위치한 S석 일대에서 성남 서포터들과 포항의 일반 관중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며 몸싸움까지 번지게 되었고, 불 구경과 함께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는 싸움 구경으로 후끈 달아오른 스틸야드 관중석의 열기를 잠재우려는 듯이, 드디어 오늘 경기의 하이라이트인 물쇼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후반들어 성남이 위치하게 될 성남 측 진영 쪽의 3대의 스프링클러가 갑작스레 동작하기 시작했는데요, 혹시 이게 그동안 포항스틸러스를 성원해 주신 포항 시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구단측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또 다른 하프타임 이벤트는 아닐까 라는 생각부터, 정말 축구장에 물을 채워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던 무리들이 이제서야 드디어 본격적인 행동을 개시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까지, 눈 앞에 펼쳐진 흔히 보기 힘든 광경이 여러 추측만을 남긴 채, 양팀 선수들이 다시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하프타임이 종료되었습니다.
4. 후반 – 인저리 타임 12분의 의미
하프타임의 스프링클러 헤프닝이 문제가 되었던 이유는 원정팀인 성남 측 진영의 스프링클러들만이 가동되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후반전 킥오프를 위해 양팀 선수들이 모두 대형을 갖춘 상황에서 스프링클러 오작동 문제에 대한 성남 벤치의 강한 어필로 후반 킥오프는 5분여간 지연되었고, 결국 포항 측 진영의 스프링클러 3대 역시 작동시켜 양측 진영 모두 동일한 조건을 만드는 것으로 합의하기에 이릅니다. 축구 경기 중의 스프링클러 가동이라는 내 평생 다시는 구경하지 못하리라 굳게 믿었던 그 장면이, 불과 5분만에 그 자리에서 그대로 방향만 바뀐채 다시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일이었을까요? 스프링클러의 작동이 경기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홈팀 진영이든, 원정팀 진영이든, 아니면 경기장 전체이든 간에, 오작동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번 스프링클러 헤프닝에 대한 김학범 감독의 강경 대응은 사실 스프링클러 작동에 따라 받게 될 실질적인 불이익 보다는 경기의 분위기를 가져오기 위한 의도된 행동이었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한 경기 결과로 당락이 결정되는 중요한 토너먼트 경기에서, 그것도 지난 8경기 동안의 맞대결을 통해 한번도 이기지 못했던 상대팀의 홈에서, 이번 경기 역시 그다지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로 끌려가다가, 효과적인 역습으로 귀중한 선제 득점에 성공하며 전반을 한 골차로 앞선 채 마감한 상황. 이 상황에서 후반전이 예정대로 진행되었더라면, 후반 초반은 하프타임 동안 동점골을 위한 일념으로 전열을 가다듬었을, 한 골차이로 뒤져있는 홈팀의 공세로 시작될 가능성이 상당히 큰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잠시 동안 만이라도 흐름을 끊을 수 있는 매우 적절한 떡밥이 주어졌으니 놓치지 않는 것이 당연했겠죠.
하지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평소 냉정한 모습으로 일관하던 김학범 감독이 지나치게 격앙된 모습을 노출했다는 점입니다. 안그래도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야간에 펼쳐지는 경기에서 선수들의 몸이 덜 풀린 탓에, 전반전부터 수비시 상대 선수를 놓칠 경우 손을 사용하는 거친 플레이가 유독 자주 눈에 띄었던 경기 양상에서, 선수들이 아무리 흥분해도 냉정을 유지해야 할 벤치가 냉정을 잃은 모습을 보였으니, 후반전 경기의 양상은 불 보듯 뻔하게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협회 주관 경기에서 유독 종종 문제가 되어왔던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이 후반이 진행되며 극대화 되었고, 주심의 판정에 대한 항의로 이미 옐로카드를 한장 받은 바 있는 성남의 김영철 선수가 포항의 역습 상황에서 남궁도 선수에 대한 태클로 옐로카드를 한 장 더 받으며 경고 누적 퇴장을 당하게 됩니다. 하프타임의 스프링클러 헤프닝과 연이은 불리한 판정에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성남의 김학범 감독은 김영철 선수의 퇴장에 대한 격렬한 항의로 경기를 10분여 중단시키고, 이 과정에서 선수들을 불러 들여 마치 농구에서나 볼 수 있던 작전 타임과 같이, 경기 중간에 선수들이 둥글게 모여 화이팅을 외치는 희귀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결국 경기 진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김학범 감독마저 퇴장 당하며 우여곡절 끝에 상황이 진정됩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주심의 판정이 주심 개인의 주관에 따르듯, 주심의 판정에 대한 판단 역시 개인의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기에, 판정 자체에 대한 언급은 차치하더라도, 이 경기의 사태가 이 지경까지 악화된 원인으로는 심판진과 경기 감독관의 미숙한 경기 운영을 첫 손에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결과론 적으로는 냉정을 잃은 성남 벤치의 과도한 항의가 경기를 거칠어지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사실 이번 경기는 전반 초반부터 여느 경기에 비해 거친 플레이가 자주 눈에 띄던 상황이었고, 이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 채 후반 들어 경기 양상이 과열된 후에야 비로소 카드를 남발하는 주심의 책임이 크다는 판단입니다. 결국 성남 벤치가 표출한 가장 큰 불만 요인 역시 판정의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었죠. 이미 경기 운영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심판진은 중요한 상황에서 한박자 느린 판정과 반응으로 사태가 겉잡을 수 없게 커지는 데에 일조합니다. 김영철 선수의 퇴장 상황에 있어서도 주심의 판정이 즉각 지체없이 나왔었더라면, 그리고 김학범 감독의 도를 넘어선 항의에 대해서도 좀 더 이른 시간에 결단을 내렸었더라면, 평소에는 관심조차 없다가 축구에 대한 안좋은 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마치 굶주린 하이에나들 처럼 썩은 고기에 눈이 뒤집히는 일부 스포츠 찌라시의 존경해 마지않는 쓰레기 기자 ‘님’ 들이 이토록 신나게 날뛰는 꼴을 보지 않았어도 됐을텐데 말이죠.
하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성남 김학범 감독의 대응에 있었습니다. 주심의 오심이나 경기 운영 상의 미숙 등의 문제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할 문제이고 시급한 개선이 필요한 문제임에는 동의합니다만, 이에 대한 불만 표시가 경기 진행을 직접적으로 방해하며 관중의 관전권을 침해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더군다나 명실공히 리그 최고 명문팀의 수장이자 축구팬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국내 지도자 중 한명이라는 김학범 감독이 이번 사태의 주인공이었다는 점에서 실망이 배가된 것도 사실입니다. 윗 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데, 최근들어 종종 문제가 되고 있는 선수들의 프로의식 부재 문제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는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주장과 감독을 모두 잃은 성남의 선수들은 어렵사리 재개된 후반전 경기를 통해 수적 우위를 앞세운 포항의 파상공세를 걷어내기에 급급했고, 후반 37분 노병준 선수의 크로스에 이은 남궁도 선수의 헤딩골로 포항에 동점골을 허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앞선 일련의 사태로 인해 무려 12분의 인저리 타임이 주어졌지만, 양팀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승부차기에 돌입합니다.
5. 승부 차기 – 계속되는 징크스
월드컵이나 챔피언스리그와 같은 토너먼트 경기들에만 익숙하신 분들에게는 축구 경기에서 승부차기가 그리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상황처럼 느껴지실 수도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승부차기 상황을 TV 중계가 아닌 실제 경기장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란 그리 흔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저 역시도 나름 적지 않은 축구 경기를 직접 관전해왔다고 자부해왔습니다만, 막상 승부차기를 직접 경기장에서 관전하는 것은 이번 경기가 처음이었더군요. 여러모로 흔치 않은 볼거리들을 제공했던 이번 경기는 그 마무리마저도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최근 포항의 승부차기 상황을 돌이켜보면 승부차기를 앞두고 승부차기 전담 골키퍼로 신화용 선수가 투입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가깝게는 지난 수원과의 컵대회 준결승 경기가 그러하였고, 지난 시즌 경남과의 리그 6강 플레이오프 경기에서도 승부차기를 앞두고 정성룡 선수 대신 신화용 선수가 투입되며 승부차기를 승리로 이끈 기억입니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는 이미 교체 카드 3장을 모두 써버린 상황이라 김지혁 골키퍼가 그대로 골문을 지킨 상황에서 포항의 선축으로 승부차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양 팀의 첫번째와 두번째 키커였던 포항의 노병준, 김광석 선수와 성남의 모따, 두두 선수가 모두 깔끔하게 골을 성공시킨 가운데 동점골의 주인공인 남궁도 선수가 포항의 3번째 키커로 나섰습니다. 항상 그 날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가 유독 결정적인 승부차기 상황에서 실축으로 무릎을 꿇는 장면이 잦았었기에 불안한 마음으로 남궁도 선수를 지켜보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듯 남궁도 선수의 발끝을 떠난 공은 정성룡 골키퍼의 손에 맞고 골대 뒤로 넘어갔습니다. 승기를 잡은 성남의 3번째 키커는 김정우 선수. 하지만 직전 남궁도 선수의 슈팅과 비슷한 방향을 향한 김정우 선수의 슈팅은 역시나 직전 정성룡 선수의 선방과 쏙 빼닮은 김지혁 선수의 선방에 막히며 승부는 원점으로 되돌아 옵니다. 그 뒤에 이어진 양팀의 5명의 키커들은 각각 실수 없이 골을 성공시켰으며, 승부는 양팀의 9번째 키커에서 갈리게 됩니다. 포항의 9번째 키커로 나선 김재성 선수가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킨 반면, 성남의 박재용 선수의 슈팅은 재차 김지혁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며 성남은 다시한번 포항에게 무릎을 꿇게 됩니다.
6. 경기 종료
승부차기 까지 가는 접전 끝에 포항은 FA 컵 준결승 진출에 성공함과 동시에 대 성남전 연속 무패 기록을 9경기로 늘려나가게 됩니다. 더불어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된 상황에서 지난해 이루지 못한 더블 우승의 목표 달성을 위해 시즌 막바지 좋은 분위기를 이어나가고 있는 포항입니다. 반면 성남은 최근 리그에서의 부진에 이어 FA 컵에서 까지도 지긋지긋한 포항 징크스에 무릎을 꿇으며, 좀처럼 분위기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이번 경기 구설수에 오를만한 벤치의 액션이 가뜩이나 침체되어 있는 선수단 분위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가 남겨진 리그 마지막 라운드와 플레이오프 경기들을 앞둔 성남에게 관건이 될 것입니다.
여러모로 많은 이야기 거리들을 남길만한 경기였습니다. 그 중 대다수가 K리그의 다소 부정적인 일면들만을 부각시키기에 매우 적합하다는 점이 안타깝지만 말입니다. 심판 판정에 있어서 개선된 모습을 보이고자 했던 연맹과 협회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이번 시즌은 유독 심판 판정에 대해 필드위의 선수들 뿐만이 아니라, 각 팀 벤치에서의 불만의 목소리가 잦았었던 것 같습니다. 시즌 초 경남 조광래 감독의 역사에 길이 남을 인저리 타임 28분의 신화 창조라던가, ‘우리가 심판을 믿어주지 않으면 누가 믿어주겠나’ 라는 멋진 멘트 후, 채 얼마 지나지 않아 심판 판정에 대한 과도한 항의로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아야만 했던 대전 김호 감독에 이어, 이번 경기를 통해 믿었던 성남의 김학범 감독 마저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축구판에 이런 크고 작은 이슈가 대두될 때 마다, 그 주체가 감독이 되었든, 선수가 되었든, 협회나 연맹의 높으신 분들이 되었든, 심지어는 악의적인 스포츠 찌라시의 하이에나 기자 ‘님’ 들과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으로 축구보는 위대하신 네티즌 ‘분’ 들이 되었든,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명목이 바로 ‘한국 축구의 발전’ 입니다. 국가대표 감독이라는 사람은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K리그 일정은 무시하고 규정에 어긋나는 대표팀 조기 소집을 강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각 클럽 팀 감독이라는 사람들은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심판들이 자기 팀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려서는 안된다며 울부짓고, 축구 선수라는 사람들은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관중석에 뛰어들어 관중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건네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연맹 역시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졸속 승강제 추진에 열을 올리고, 축구 협회 회장이라는 사람은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본인이 운영하는 2부리그 구단의 1부리그 승격 조건으로 연고 이전을 내걸고 있습니다. 그나마 언제나 한결같은 언론은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자신들의 악의적인 K리그 비난 기사가 필수 불가결하다고 믿으며, 언제나 공명정대 하신 우리나라 네티즌 여러분들께 올림픽에서 메달 하나 못 따는 ‘한국 축구’는 발전은 커녕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할 존재로 인식된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토록 입을 모아 외치는 ‘한국 축구의 발전’ 이 과연 모두 동일한 지향점을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무엇보다 여전히 이곳 저곳에 산재되어 있는 축구판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목표로 제시하기에 ‘한국 축구의 발전’ 은 지나치게 원대하고 추상적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우리 국민들 하나 하나가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가 모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듯, 축구판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 하나 하나까지 모두 ‘한국 축구의 발전’ 에 빗대어 비약하기 이전에, 이제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좀 더 구체적인 발전상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프로 스포츠인 K리그가 된다면, 그 어느 것보다 관중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생각이며, 그 어떤 이유로도 관중의 관전권이 침해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입니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고 했듯이, 오늘 경기를 비롯하여 최근 계속되고 있는 일련의 사건 사고들이 우리 리그가 좀 더 건강해 질 수 있도록 든든한 자양분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